생리대라는 물건이 있다. 나는 평생 사용할 일이 없는 여성용품이고, 그 사용부위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공개적으로 남자가 언급하기엔 변태남스러운 물건이기도 하다.
뭐 평생 사용할 일도 없고 관심가질 일도 없는 물건이기는 하나,
아직 결혼도 안한 총각 주제에 난 은근히 생리대에 관한 추억(?)들이 많다.
할일도 없으니, 하나하나 써 보자.


1. 스무살 때,생리대 심부름
한참 순진무구의 극치를 달리던 스무살 시절,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때 같이 일하던 스물아홉의 누나가 있었는데,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려 8살이나 된 아들이 있는 유부녀였다.
뭐 겉으로는 그닥 유부녀라는 걸 느낄 수 없는 누나였지만(물론 옷을 보면 왠지 후줄근한게 유부녀스럽기는 했다)
'나는 이제 아줌마야!'라는 걸 확실히 각인시켜 준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으니.

주유소 근처 마트로 비품을 사러 가는 길이었다.
한참 덥고 출출한 시간대라서 군것질 거리나 음료 등을 같이 사오려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이 없는지 물어보고 다니는데,
그 누나가 나보고 생리대를 사오라는 것이었다-_-
그러면서 뭘 사오면 된다고 자세히 설명을 해 주기 시작했다.
위X퍼를 보면 무슨무슨 종류가 있는데, 그중에 이걸 사오면 된다고...(10년이나 되어서 뭘 시켰었는지 기억이 안남;)
그리고는 내가 잘 모를까봐 겉포장 색깔과 인상착의(?)를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난 순진한 마음(?)에 격렬히 저항했지만, 그게 뭐 어떻냐는 감언이설과 '그럼 내가 거기까지 걸어가서 사오랴!'는
누나의 버럭질에 그만 주문을 접수하고 마트로 출발하게 된다.
마트에 도착해 생리대 코너에 도착하자, 뭔 생리대 종류가 이렇게 많은거냐-_-
말해 준 대로 물건을 골라 집어들고 계산을 하는 그 순간까지
난 왠지 내가 변태남이 된 것 같은 망상에 사로잡혀 있어야만 했다.
지금보면 참 난 순진하고 바른(응?) 청년이었던 것 같다. 훗-ㅂ-
어쨌거나 난 무사히 생리대를 누나에게 전달해 주었고,
난 다행스럽게도 그 누나가 다음 달 다시 마법에 걸리기 전에 알바를 그만두게 되었다-_-


2. 헌병들도 애용한다는 위X퍼!
군대에 있을 때 일이다.
우리는 경계작전을 하는 부대여서 매일매일 방탄헬멧(하이바)을 착용해야만 했다.
근데 이 하이바란게 안쪽 이마에 닿는 부분은 가죽이 덧대어져 있어서
여름엔 땀이 장난아니게 차고 가죽에 땀이 절어서 냄새가 진동하는 그런 물건이다.
그래서 위생상 땀을 흡수할 수 있도록 이 부분에 손수건을 덧대어 사용하기도 한다.
손수건은 가죽보다 땀을 훨씬 잘 흡수하는 데다가 땀이 많이 차면 빨아서 다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데,
'흡수'라는 측면에서는 손수건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물건이 있다.
바로 날마다 광고에 그 강력한 흡수성을 떠들어 대는 '생리대'!!
당시 같은 부대에서 여친에게 정기적으로 소포를 받아 생리대를 이용하는 고참이 있었는데,
같이 근무나가서 운좋게도 몇 개를 얻을 수가 있었다.
그 효과는............
그야말로 마법에 걸린 기분이었다! 이렇게 하이바의 착용감이 상쾌할 수 있다니!-_-
모양새야 심히 변태남스럽지만(머리에 그걸 쓰고 있다고 생각을 해 보시라)
뭐 어떠냐. 어차피 하이바 안에 대는 거니 밖에서는 보이지도 않는데.

나중에 이 이야기를 술자리 같은데서 여자들에게 하면 어김없이 변태 취급을 받았지만
사실 이건 군대에서는 자주 쓰이는 민간요법(?)의 하나라는 것.
당신의 남친도 군대에서 하이바에 생리대 대놓고 희희낙락했을지 모르는 거다.

<이런거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_->




3. 학교 과제로 제출한 템포 광고기획서
예비역 병장의 포스(혹은 쉰내)를 풍기며 학교로 복귀한 스물세살 대학교 2학년 때의 일.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데, 광고기획서를 작성하는 수업이었다.
강의를 함께 듣는 학생들끼리 특정한 제품을 정해주고 기획서를 쓰는 수업이었는데,
그때까지만해도 생판 들어본 적이 없는 미지의 제품인 '템포'가 과제 제품으로 걸렸다.

두둥~ 템포, 템포라...
아마 남자들의 경우에는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여자들의 경우에도 알고는 있으나 사용해본 경험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그런 물건 되겠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잠시 설명을 하자면, 템포는 '탐폰형 생리대'라고 하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물건으로
그냥 애기 기저귀처럼 사용하는 일반 위X퍼 같은 생리대와는 달리 직접 해당 부위에 삽입하여 사용하는 생리대로
일반 패드형 생리대보다 착용감이 적고 움직임이 자유로운 물건이(라고 한)다.
나도 저 과제 하지 않았으면 평생 알 일이 없는 그런 물건이다.
더군다나 좀 심히 창피한 물건이 아닌가! '삽입형'이라니!!-ㅂ-
하지만 복학 후 첫 학기를 말아먹을 수는 없었기에 난 자료조사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지식인이 상당히 알찬 지식공유의 장이었기에 난 지식인을 이잡듯이 뒤져가며
템포에 대한 모든 정보를 섭렵하게 되었고
그걸로도 부족한 정보들은 생리대 이야기도 소화 가능한 몇 안되는 주변의 여자 지인들에게 밥과 술을 사 먹여가며
정보를 빼내, 결국 과제를 완료할 수가 있었다.
그 덕분에 난 삽입형 생리대에 관한 꽤 깊은 수준의 이해도를 가진 남성이 될 수 있었다. 털썩.

<템포의 구조도. 저 얼마나 에로틱한 형상인가!>



4. 편의점의 생리대 (1)
그 템포 기획서를 과제로 제출하고나서 약 1년여 후, 여름방학 때 편의점 알바를 하게 되었다.
한적한 동네의 주중 야간 알바였기에 오는 손님이라고는 가끔 담배사러 오는 손님 정도밖에 없어서
책도 읽어가며 여유롭게 일을 하고 있던 중, 어떤 아줌마가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습관적으로 어서오세요를 외친 후 다시 책에 집중하고 있는데
생리대 코너로 들어간 아줌마가 한참 물건들을 살펴보다가 나오시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학생, 우리 딸이 생리대를 사오라고 했는데 뭘 사야 되는겨?"
"예???"
아줌마도 참, 제가 그걸 어찌 알겠습니까.
그래도 물어보자마자 모른다고 하는 건 나의 서비스정신이 용납치 않았기에 나는 어차피 봐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카운터를 벗어나 생리대 코너로 들어가, 아줌마와 함께 열심히(?)생리대를 고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역시 액션이었을 뿐, 내가 뭘 알겠는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난 "따님한테 전화를 해 보시는게 어떨까요?" 라는 권고와 함께 GG를 치고 말았다.
그러자 그 아줌마는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더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건, 그 아줌마도 여자면서 왜 생리대 종류를 몰랐느냐는 거다.
설마 사실은 남자였다거나. 뭐 이런건 아니겠지.


5. 편의점의 생리대(2)
편의점 계산대에는 비닐봉투가 비치가 되어 있는데, 반투명 백색의 비닐봉투가 있고 검은색의 비닐봉투가 있다.
(대부분 백색의 비닐봉투를 사용할 것이다. 검은색이 더 비싼 건지는 모르겠다)
처음에 일할 때 백색 비닐봉투와 검은색 비닐봉투 두 가지가 비치되어 있길래 난 아무 생각없이
손에 잡히는대로 검은색과 백색 비닐봉투를 번갈아 가며 사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20대 여자가 편의점에 들어오더니 생리대를 구입했다.
계산을 하고 습관적으로 "봉투에 싸드릴까요?" 라고 물어봤더니 당연하게도 봉투를 달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덜렁덜렁 들고 집에 가는 것도 웃기는 일이겠다)
그래서 난 생각없이 흰색 봉투에 담아 줬는데, 이 여자가 검은 봉투에 다시 담아 달라는 것이었다. 밖에서 보인다고.

근데 평소에 무분별(?)하게 검은 봉투를 남발했던 터라, 카운터에 검은 봉투가 남아 있지를 않았다.
검은 봉투가 없다고 하자 그 여자는 상당히 난처해 하며 대책을 요구했고,
난 결국 흰봉투를 세개를 겹친 후 생리대를 담아줄 수밖에 없었다.

편의점 알바하시는 분은 알아두시라. 검은 봉투는 생리대 담아줄 때 쓰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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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unke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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