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시작부터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분명히 비슷한 시간에 맞추어 나왔다고 생각했는데도 항상 타던 지하철 시각을 맞추지 못하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으레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출근시간에 약간의 지각은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으니.

그러고보니 오늘은 이상한 일이 참 많았다. (팀장님을 비롯한) 팀메이트들은 하루 종일 보이지 않다가 내가 퇴근을 위해 컴퓨터를 끄는 그 순간 나타나 자신의 컴퓨터를 켜고 일할 준비를 시작했다. 심지어는 그 타이밍까지도 기가 막혔던 것이, 내가 쾌적한 퇴근길을 위해 화장실을 다녀온 그 찰나의 시간 때문에 그 불편한 상황이 연출되고 말았던 거다. 그 화장실만 안 갔더라면.
그뿐만 아니라 일때문에 캔커피 20개를 구입하러 간 마트에는 캔커피가 정확히 19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캔커피를 사서 건네줄 사람을 눈앞에 두고서도 알아보지 못하고 5분여간 멍하니 다른 사람을 기다리는 짓을 자행하기도 했다. 외근 후 복귀를 위해 올라탄 버스는 목적지를 단 두 정거장 남겨둔채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는 '잘못 탄' 버스였고, 그나마도 지도를 잘못 본 덕분에 쓸데없이 횡단보도를 두번이나 건너야 했다.
퇴근 후 봉사를 위해 성당으로 향하는 길도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퇴근시간임에도 지하철은 '넉넉한' 간격으로 도착했고, 일하는 곳으로 올라가는 길에 챙길 준비물 중 단 하나를 빠뜨린 덕분에 계단을 한번 더 오르내려야 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낑낑대며 도착한 방은 굳게 잠겨 있었고, 열쇠를 챙겨 오면서 또 딱 한 가지의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아 방을 두어 번 더 왔다갔다해야만 했다.
희한하게도 나와 같이 봉사를 하는 누나가 칼질 중 사고를 당해 크게 다쳤고, 돈계산은 딱 1만원이 틀려 비운 돈을 찾아내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그 와중에 분명 장부상에는 존재하는 책 열댓권이 사라졌고, 수강생들의 출석카드 두어개가 사라졌다. 없어진 1만원을 찾는 과정에서 한 여자분을 굉장히 부끄럽게 만들어 버렸고, 출석카드를 찾는 과정에서 같이 일하는 10여명의 봉사자들을 우왕좌왕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집에 가던 중 잠깐 들른 커피점에서는 커피가 튀어 옷에 묻었고, 커피를 들고 올라탄 버스는 뒷좌석이 서로 마주보는 형태의 괴상한 버스였다.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자 컴퓨터는 두어번 오류를 내며 멈춰 버렸고, 내가 이 모든 이야기들을 글로 옮기려고 하자 시간은 새벽 한 시를 훌쩍 넘어 버렸다. 문득 갑자기 생각난 지인에게 안부문자를 날렸는데 하필 그시간까지 야근중이어서, 괜히 심기만 건드린 꼴이 되었다.



뭔가 이상한 하루. 너무 이상한 하루.
잦은 휴일의 끝에 찾아온 후유증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너무도 많은 일이 어긋나 버린 하루였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SEASON 1 > 잡담/분류불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즘 책 정말 안읽는다  (1) 2010.09.06
꿈의 설계  (0) 2010.08.16
아이폰+블루투스 키보드로 티스토리에 글쓰기  (2) 2010.08.01
Shouting Vuvuzela  (0) 2010.06.15
배터리 강박증  (0) 2010.06.07

posted by drunkenste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