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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6.25라고 부르는 한국전쟁은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 전쟁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어떤 전쟁보다도 우리가 많이 들어왔고, 또 상대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전쟁이다.
뭐 물론 요즘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젊은세대들은 6.25가 언제 발발해서
언제 휴전에 이르렀는지를 꽤 많이 모르는 것 같더라만,
(국사가 선택과목이 되었다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됐건 적어도 세계의 다른 전쟁들보다는 많이들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국사를 정식과목으로 배운 세대이고, 역사(특히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따져보니 생각보다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천 페이지가 넘는, 사전보다 두꺼운(ㄷㄷㄷ)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고
이 책을 통해 한국전쟁의 경과를 속속들이 알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이제까지 내가 배워왔던 내용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보고 있다.
뭐 물론 저자가 미국인이니 철저히 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것이야 예상했던 바이지만,
이 책은 단순히 한국전쟁의 기록 뿐만 아니라(오히려 전쟁기록 면에서는 책의 볼륨에 비해 꽤 부실하다)
한국전쟁을 둘러싼 국제정세와 미국 트루먼 행정부의 정치적 상황, 그리고 사실상 전쟁을 주도했던 미군 수뇌부의
갈등 같은 '야사'까지도 폭넓게 다루고 있다.
더글라스 맥아더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거의 다 알만한 한국전쟁의 대표적인 영웅이다.
인천에는 맥아더 동상이 무려 '자유공원' 안에 세워져 있고,
선글라스에 파이프담배를 물고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는 맥아더의 사진은 누구나 쉽게 머릿속에 떠올릴 정도다.
그런데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불과 6개월만에 파면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해서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지 불과 3개월만에 다시 38선 이남으로
후퇴해야 하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9월 15일 인천으로 대규모 육해군 연합 상륙작전(사실 굉장히 무모한 작전이었고 그래서 성공할 수 있었다)을 감행한
맥아더는 안그래도 늘어질 대로 늘어진 인민군의 보급선에 큰 타격을 입히며 전쟁의 양상을 성공적으로 전환시켰다.
하지만 승리에 도취된 맥아더는 중국 개입의 징후가 속속 나타남에도 그것을 무시하고 쾌속 진군하다가
결국 11월경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중공군에 의해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다시 후퇴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놀라운 점은, 미국은 꽤 일찍부터 중공군의 개입을 알아챌 기회가 많았다는 점이었다.
정보기관의 경고도 있었고, 또 미군과 한국군이 북한 깊숙히 진격하면서 중공군 포로를 생포하면서 얻은 정보를
맥아더는 고의적으로 묵살하거나 축소하면서 오로지 압록강을 향해 내달린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연합군이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불가피하게' 퇴각해야만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전력의 대부분이 소총, 기관총과 박격포로 이루어진 보병전력이었던 중공군에게
각종 포격과 공군지원 등의 첨단전력을 지닌 미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쉽게 생각해 중공군이 저글링이라면, 미군은 시즈탱크의 지원을 받는 마린 정도라고 보면 될 거다.
이걸 맥아더는 탱크가 자리를 잡기도 전에 무리하게 마린을 밀어 넣어 다 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맥아더의 후임으로 미육군 극동사령관이 된 매튜 리지웨이는
실제로 51년 초에 중공군을 성공적으로 막아냄으로써 미군이 그렇게 무기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는 괴상하리만치 신격화되어 있는 맥아더에 대한 이미지가 못마땅했었는데,
이 책에서 신랄하게 까(?) 줘서 읽는 내내 즐겁기는 했다.
다만 서두에서 말했듯이 철저히 미국인 관점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본 터라,
한국군의 이야기는 거의 없다는 것이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조금 아쉽다.
사실 책만 읽어서는 한국전쟁이 '미국vs중국'의 전쟁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게 만드니 말이다.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에 다분히 주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그리고 출처가 뻔한(학교 국사책 아니면 군대 정신교육) 교육으로 다소 편향되어 있었던
우리나라의 전쟁, 6.25에 대한 세계사적인 이해를 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천천히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글쎄. 아직도 책 두께만 보면 후덜덜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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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unkenstein